
나를 잊었느냐고 물어서 미안하네. 고국에서 누군가 오면 반갑고 좋아서 내가 먼저 정을 붙여 지내다가 이렇게 내 마음만 남는 과정을 한두번 겪었겠나. 그런데도 왜 매번 나는 이렇게 처음 겪는 일처럼 휘둘릴까.
정이 많아서 헤어짐이 어렵다. 헤어지는 순간에 눈물이 마구마구 난다. 최근 아기들이랑 놀고 집에 돌아가는데 헤어짐이 아쉬운 아기가 갑자기 방에 들어가서 우는데 어렸을 적 내 모습이 보였다. 어른이 돼도 헤어짐은 어려워~ 그렇지만 우린 또 볼 거야.라고 말하고 돌아섰다. 아기에게 큰 정을 받은 거겠지? 헤어짐에 우는 건? 근데 나에겐 크지 않았겠지.
이제 내 헤어짐에선 내가 아기다. 퇴사 날에 왜 처음도 아닌데 주책맞게 펑펑 눈물이 날까. 웃기다. 다신 정 안 줄 거야. 다짐을 또 한다. 정을 붙이는 건 쉬운데 떼지 못하고 헤어지는 건 어렵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남았네. 그래도 마음 맘껏 쓰고 표현하고 받아주는 사람들을 보며 헤어지는 건 후련하네 좀.
남편은 존경했던 사람이 본인과 가족을 고국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사람으로 바뀌었어도 그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않았네.
상황이 엄청나게 반전 됐는데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존경심을 말이다.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존경하는 분이 국가적으로 큰 사건을 일으켰고 죽었고 내 가족과 삶의 환경이 바뀌었는데 어떻게 죽은 자에게 마음이 돌아서지 않았을까. 나는 내가 살아야 하는데 세상 어떤 이유를 가져와서 변한 내 마음을 변명하기 바빴을 것 같다.
그때 큰아들이 그러더군. 엄마, 하느님이 세상을 만드신 후 일주일에 한 번은 쉬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우린 가게를 일주일 내내 다 열었잖아요. 그래서 그 돈을 잃은 것 같아요. 하느님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고 우리 다시 시작해요.
와. 보자마자 리스펙한 생각이다. 쉼을 이야기하면서 위로와 긍정적 마인드까지 어떻게 의지대로 한 상황이 아닌 걸 알고 탓하지 않고 이렇게 힘을 줄 수 있다니 멋있다.
이 세상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겪는 희로애락을 보고 듣고 함께 겪으며 나는 차츰 내가 이민자라는 걸, 이민자의 삶을, 받아들였네.
사람들은 모두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찾으러 다니는 것 같다. 나의 이야기를 많이 말하기 위해서 듣고 보고 말하는 법을 배우러 다니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를 보는 것 같다. 내가 그러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같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함께 겪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타지생활하면서 이민자의 삶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소외받는 느낌과 어디도 속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적응하지 못한다는 강박감. 나만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는 생각의 되새김. 받아들이고 마주하기 싫었다. 그런데 자연스레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나와 비슷하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모두 느꼈던 이야기라는 걸 알았다. 그러니 점점 인정하기가 쉬어진다.
왜 인정하기 싫었던 걸까? 모험은 좋아하고 타향살이, 이민은 싫어할까.
모험은 돌아올 곳이 있다는 강한 믿음이 있어서일까? 잠시 여행을 떠나는 새로운 경험이고. 타향살이는 여행이 아닌 정착 이어서일까? 낭만을 벗어나서 현실로 다가와서일까? 짧은 시간의 달콤한 꿈은 좋아하고 악몽이라도 꿈에서 깰 수 있으니 좋고, 현실에서 하루를 연습하고 인내하고 훈련하는 귀찮고 재미없는 일 계속 이어지 때문이겠지.
휘발성 메모리와 비휘발성 메모리..... 램과 하드 디스크인데?
모험과 이주 이 두 단어의 차이는 좀 더 질문을 던지며 알아봐야겠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어서일까.
준비된 이별보다 갑작스런 이별이 더 많겠지? 통보받았을 때 힘들었어요. 나는 내가 당하는 갑작스러운 헤어짐에 힘들어한다. 근데 오늘 이 문장을 보니까, 내 삶에 과거도 앞으로도 갑작스러운 이별이 더 많지 않을까?하는 질문이 생긴다. 언젠간 헤어지고 그 건 언제 올 지 모른다. 힘들어서 불안할 수 있지만 막을 수 없다. 그럼 계속 무너져야 하나, 무너질 수 있지. 대신 일어날 수 있는 것도 기억하길. 언제 헤어짐이 올 지 몰라서 불안한 것보다 앞으로도 갑작스러운 이별이 많을터니 그 중 하나다. 너무 힘들고 아프다고 겁먹지 않기를 바란다.
'습관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별 끝에서 - Day 2 (0) | 2023.08.31 |
---|---|
이렇게 이상한 사랑은 처음이야 - Day 1 (0) | 2023.08.31 |
장르는 여름밤 - Day 4 (0) | 2023.08.15 |
장르는 여름밤 - Day 3 (0) | 2023.08.14 |
장르는 여름밤 - Day 2 (0) | 2023.08.13 |